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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치는 법을 알아 겸포를 짜서 "청색의복을 착용하였으며 청색, 적색, 자색 등의 색실로 문양을 넣어짠 금직이 사용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삼국지 권13. 오환선비(烏丸鮮卑) 동이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점문ㆍ원문의 문양 과 삼힐의 염색기법이 보이고 그것은 신라 공예품에서도 나타나 양국의 영향관계를 알 수 있다.
왕복은 오채라는 색깔옷을 착용 했으며, 대신은 청색옷을 입고 서민은 갈옷을 입었다.

백제는 품관별 복색제도를 정하여 신분을 구별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적색, 청색, 황색, 자주색, 비색 등의 색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시기의 유적 공주 송산리 고분벽화의 사신도, 일월도와 부여 능산리 고분 벽화의 사신도, 연화문, 구름무늬 등에서도 주, 황, 청, 흑색의 색채가 보여 뛰어난 염색기술을 볼 수 있다.

신라의 염색기술은 직위에 따라 자색, 비색, 청색, 황색의 옷을 입게 하여 자초, 꼭두서니, 쪽, 황벽, 울금 등의 식물염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염색관계 부서를 두어 다양한 염색기술을 발전시켰다.
 
고려는 사영공장과 관영공장에서 염직물을 생산하였다.
특히 염색을 관장하기 위해 관영 직조 염장인 도염서 등에 염료공과 염색공을 두어 염색을 담당하게 하면서 전문성을 띠며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자초 염색은 중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기술이 우수하였으며 좋은 산 자초 품종을 가지고 있었으며 산자초 채취를 금지하라는 재배지역지도도 볼 수 있다.
 
가내수공업과 농촌수공업 이외에 경공장에서 교역품과 귀족충당의 염색품을 생산하였다. 염색장은 청염장 30명, 홍염장 20명, 황염장 20명으로 분업화되어 생산되었다. 설치된 공장이 보여주듯이 청색과 홍색이 중심이었다. 청색은 쪽으로, 홍색은 수입 소방목과 홍화로 염색하였다. 화학염료가 들어오기 전인 1800년대 말 까지는 주로 치자, 울금, 황백, 홍화, 소목. 자초, 쪽 등의 식물성 염료를 사용, 매염제로는 잿물, 석회, 오미자산, 오매산, 명반, 철장 등을 이용하였다.